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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Life in Australia)

브리즈번은 지금 태풍 전야, 아니 사이클론 전야

by 호주마마 2025. 3. 6.

사이클론 전야가 이런 것인가?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평온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꼭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이클론 알프레드는 어젯밤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느리게 이동하고 있다. 속도가 느려진 만큼 더 강한 비바람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이는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브리즈번에 15년을 살면서 겪은 사이클론은 2011의 야시와 2017년에 발생한 사이클론 데비였다. 두 번 다 브리즈번을 직접 통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사는 해안 지역을 통과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이틀 동안 우리는 사이클론을 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이클론의 간접적인 영향도 얼마다 클 수 있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이클론 대비 과정

2일 전: 사람들의 불안이 눈에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날이었다. 하지만 슈퍼마켓에 가보니 선반이 텅텅 비어 있었다. 물, 통조림, 즉석식품 같은 생필품이 빠르게 동났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며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혹시 빠뜨린 것이 없나 점검하며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1일 전: 본격적인 준비

어제부터 문자와 이메일이 연달아 도착했다. 유치원, 학교, 학원,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었다. 대중교통도 일부 운행을 멈춘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빠진 물품이 없는지 확인하며 준비물을 정리했다.

 

친구가 글로우 스틱(Glow Stick)이 유용하다고 해서 구입했다. k마트에서 한 팩에 $3였다. 손전등과 양초도 있지만,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전기가 끊겼을 때 글로우 스틱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 밖에 있는 것들은 최대한 창고에 넣어 두었다. 우리 집에는 화분이 많은데, 베란다 중앙 쪽으로 모아두었다. 남편은 빗물을 모아 배수역할을 하는 거터와 배수관을 확인하고 청소를 했다. 이를 잘 확인하지 않았을 때 비가 지붕으로 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일: 최후의 점검

오늘은 집을 정리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그랩 앤고 백(Grab & Go Bag)'을 꾸렸다. 한마디로 응급상황가방이다. 여기에는 옷가지와 약간의 음식, 비상용 약, 중요 서류 등이 들어있다.

 

우리 집 옆에는 10~15m 크기의 소나무가 있다. 강풍에 나무가 우리 집 방향으로 쓰러진다면 대피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를 했다. 이 소나무는 우리가 집을 소유했을 때부터 함께 해온 나무였다. 이번 사이클론 이후에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그리고 몇 가지 요리를 해서 냉장고에 얼려두었다. 혹시 전기가 끊겨도 녹는데 시간이 걸리고 간단히 데워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수를 대비해 욕실에 물을 가득 받아 둘 예정이다. 만약 물 공급이 중단되면 특히 화장실 사용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리즈번 사이클론 알프레드 대비에 관한 나의 다른 글도 참고해 보기 바란다.

2025.03.04 - [호주생활] - 브리즈번 사이클론 Alfred 대비: 재난 대비 전략과 필수 준비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준비한 '그랩 앤 고 백(grab & go bag)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우리집의 그랩 앤 고 백(Grab &Go Bag)' 가방들이다. 여기에는 옷가지와 약간의 음식, 비상용 약, 중요 서류 등이 들어있다. 아이를 위한 장난감과 게임도 넣어두었다. 이 가방을 사용하질 않길 바라며 철저히 준비를 했다.


왜 호주인들은 사이클론을 더욱 불안해할까?

사이클론(Cyclone)과 태풍(Typhoon)은 같은 열대성 저기압이지만, 발생하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태풍이 매년 발생해 어느 정도 익숙한 반면, 브리즈번은 사이클론이 드물다.

 

호주 사람들은 왜 사이클론에 불안해하며, 정부에서도 준비를 철저히 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1. 나무로 지어진 집: 브리즈번의 주택은 더운 기후에 맞춰 나무로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무집은 강한 바람과 폭우에 취약하다. 따라서 사이클론이 오면 큰 피해가 예상된다.
  2. 홍수 피해: 사이클론이 오면 동반되는 폭우가 문제다. 브리즈번 강 인근 지역은 정기적으로 홍수 피해를 겪는다. 정부는 일부 지역의 집을 사들여 공원으로 만들거나, 집을 높이는 공사를 지원하고 있지만, 모든 집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3. 기후 변화와 이상 기후: 최근 몇 년간 호주는 극단적인 날씨를 자주 겪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사이클론이 더 강해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날씨 전문가들은 이번 사이클론 알프레드를 두고 ‘erratic’(불규칙한, 변덕스러운, 예측하기 어려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unpredictable’과 유사하지만, 보다 변동이 심하고 일정한 패턴 없이 불규칙하게 변화할 때 쓰이는 단어다.
  4. 역사적 트라우마: 호주는 사이클론 트레이시(1974년), 래리(2006년), 야시(2011년) 등 파괴적인 사이클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사이클론 트레이시는 다윈 시를 거의 완전히 파괴했으며, 이러한 과거의 경험이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 사이클론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있다.
  5. 인프라 취약성: 호주의 일부 지역, 특히 퀸즐랜드 북부와 서부 지역은 사이클론에 취약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전력선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고, 일부 오래된 건물들은 현대적인 사이클론 대비 건축 코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것이 한국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6. 고립 위험: 사이클론으로 인해 도로가 침수되거나 파괴되면 지역 사회가 고립될 수 있다. 호주의 광활한 지역과 분산된 인구 특성상, 구조 작업이 어려워질 수 있어 사람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진다.
  7. 경제적 영향: 사이클론은 농업, 관광업, 광업 등 호주의 주요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불안정은 사이클론에 대한 우려를 더욱 높인다.
  8. 야생동물과 환경 파괴: 호주인들은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사이클론은 산호초, 열대우림, 맹그로브 숲 등 취약한 생태계를 파괴하고 멸종 위기 종을 위협할 수 있어 추가적인 불안 요인이 된다.

폭풍(Storm)과 사이클론(Cyclone)의 차이점

여기서 잠시 폭풍과 사이클론에 대한 차이점을 알아보자. 사이클론이란 강한 바람과 폭우를 동반한 열대성 저기압이다. 반면, 스톰(Storm)은 강한 비바람을 포함한 폭풍을 의미하며, 꼭 열대성 저기압일 필요는 없다.

  • Cyclone(사이클론):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 중심으로 회전하는 대형 폭풍이다.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태평양 서북부(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등)는 태풍, 대서양 및 북동태평양 (미국, 카리브해, 멕시코, 중남미 등)은 허리케인, 남반구 및 인도양 지역 (호주, 인도, 방글라데시 등)은 사이클론인 것이다. 그리고 호주에서는 바람 속도가 시속 63km 이상이면 사이클론으로 분류된다.
  • Storm(폭풍):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천둥번개를 동반하는 뇌우(Thunderstorm), 강한 바람이 부는 윈드 스톰(Wind Storm) 등이 있다.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같은 특정 기상 현상도 모두 'storm'의 한 종류이다.

즉, 모든 사이클론은 스톰이지만, 모든 스톰이 사이클론은 아니다.
호주 기상청에 의하면 오늘 오는 사이클론 알프레드는 목요일에는 해안과 몇몇 지역에는 시속 100km-120km로 예상되고 있으며, 금요일 해안 및 섬 지역에는 155km에 달하는 돌풍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브리즈번은 시속 90km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bom 웹사이트에 나온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만 달려도 얼마나 빠른가? 내 옆에 시속 155km로 달리는 차가 있다고 가정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정말 빠르다. 이런 속도의 바람이 회전을 하면서 천천히 움직일 때의 피해는 상상도 하기조차 힘들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 대비할 방법

사이클론이 지나가는 동안은 최소 2~3일 동안 외출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어린아이와 함께라면 부모의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한 요소다. 우리 집에서는 다음과 같은 준비를 했다.

  1. 보드게임과 실내 놀이 준비 정전이 되면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카드게임이나 퍼즐 같은 놀이 도구를 준비했다.
  2. 재난 관련 교육 정부에서 제공하는 재난 대비 책자와 유튜브 영상(버디와 사이클론)을 아이와 함께 보며 사이클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사이클론뿐만 아니라 다른 자연재해에 관해서도 나오는데 내용을 너무 심각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3. 미리 음식 준비 전기가 끊길 경우를 대비해 먹기 쉬운 음식들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마무리하며

사이클론이 오기 전에는 조용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큰 긴장감을 준다. 호주에서 사이클론은 흔하지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피해가 막심하다. 그리고 사이클론 알프레드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간접적이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비가 중요하다. 이번 사이클론이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바라며, 우리가 철저히 준비한 만큼 무사히 이 시간을 보낼 수 있길 기도해 본다.